1918년 11월 11일, 독일제국은 무너졌고 이 이듬해인 1919년 6월 21일, 세계에서 2번째로 거대한 함대였던 독일의 대양함대는 스캐퍼플로에서 자침함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는 앞으로 독일 해군의 암울한 미래를 예시하는 사건이었죠. 베르사유 조약으로 구속구가 채워지며 20여년을 견딘 독일은 1935년 나치 독일의 재군비 선언으로 다시금 대양함대를 재건하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금전의 여유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거기에 시대의 발전에 따른 기술과 교리의 격차도 독일 해군에겐 큰 문제였습니다.
사실 독일 해군에게 베르사유 조약은 구속구 수준을 넘어 사형선고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약 내용은 주력함의 보유를 절대 금지하면서 오직 경순양함 6척, 구축함 12척, 배수량 1만톤 이내의 전 드레드노트급 6척이 보유 만을 인정했습니다.
독일 제국이 해군력을 증강할 수 있었던 이유도 비스마르크시절 통일독일의 경제적 성장력과 맨파워를 통한 대양함대 건설이 가능했고, 이와 더불어 팽창정책을 지지하는 독일 내부의 정치인-대표적으로 빌헬름 황제-들이 득권함으로 가능했습니다. 독일의 팽창정책은 19세기 당시 해양력을 바탕으로 영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고 해양력을 집중적으로 증가시킨 독일의 도전은 결국 1차 대전으로 연결되었기에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해군에게 사형선고를 내림으로써 독일이 더 이상 유럽 열강들에게 도전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제국해군의 몰락은 이후 넘처나는 군함들로 감당이 안된 열강들이 군축조약으로 보유하고 있던 수 많은 전투함들을 폐기하게만든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제국이 무너지고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Deutsches Reich)시절 라이히스 마리네(Reichs marine)는 그야말로 무력한 함대를 보유할 뿐이었습니다. 대다수가 1890년대에서 1900년대 초반에 건조된 11인치 주포를 쓰는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 6척과 가젤(Gazelle)급 경순양함 5척, 그리고 경순양함 베를린(SMS Berlin)뿐 이었습니다.
1921년 처음으로 신규 군함을 건조할 때도 주력함인 전함보다 경순양함을 건조했는데 바로 엠덴(Emden)입니다.
엠덴은 1921년에 발주를 받아 1925년 1월에 진수를 거쳐 동년 10월에 취역했습니다. 엠덴은 동형함이 없었고 1차 대전이 끝난 뒤 독일 최초로 건조된 군함이라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순양함은 독일이 본격적으로 건조한 신형함으로 1926년에 건조를 시작해서 27년에 진수를 거치고 29년에 취역하게 됩니다. 구시대에 머물렀던 엠덴에 비하면 많은 부분이 발전했습니다. 특히 주포를 최초로 포탑식으로 배치했죠.
앞서 말했듯 이 함급은 포탑식 주포가 도입되었는데 5.9인치(15cm)/C25 주포를 새로 개발했으며 이를 3연장으로 포탑식으로 3기 배치했습니다. 특이하게 후방주포의 배치가 일직선이 아니라 어긋나게 배치한 점도 재밌습니다. 부포는 여전히 8.8cm포를 운용했고 50cm 3연장 어뢰발사관 4기로 공격력을 대폭 증가시켰습니다. 함교의 디자인은 엠덴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속력은 32노트로 증가해 타국 경순양함과 동일한 속력이 된 이 함급의 무게는 기준배수량 7,700톤이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네임쉽과 자매함 칼스루헤(Karlsruhe), 쾰른(Köln)으로 총 3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함급이 취역하면서 그동안 보유했던 구식 순양함 3척은 퇴역하게 됩니다.
제대로 된 순양함이었기 때문에 2차 대전에서 운용되지만 쾨니히스베르크는 1940년 4월, 노르웨이 침공때 베르겐에서 영국해군 항공대의 폭격을 받아 결국 급강하 폭격기의 100파운드 폭탄을 맞고 침몰했고 자매함 칼스루스헤 또한 쾨니히스베르크가 침몰한 전날 영국 잠수함 HMS Truan의 뇌격에 침몰합니다. 자매함 중 오직 쾰른만 45년까지 생존해 있었지만 수상함 전력이 와해된 45년 당시 대다수의 수상함 처럼 항구에 방치되어있다 폭격을 맞고 45년 3월에 침몰합니다.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은 쾨니히스베르크급 다음으로 건조한 경순양함입니다. 디자인과 성능은 쾨니히스베르크급의 개선을 목적으로 했다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쾨니히스베르크급과 매우 유사하지만 2개였던 연돌을 중앙에 대형연돌로 1개로 줄였고 후방 주포의 배열도 개선했죠.
라이프치히급부터 주포배열이 중앙선에 가지런히 맞춰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이프치히는 쾨니히스베르크가 의장공사 중인 1928년에 건조를 시작했습니다. 무장은 쾨니히스베르크와 동일했는데 29년에 진수되어 31년에 취역했습니다. 네임쉽인 라이프치히 자체는 쾨니히스베르크와 큰 차이점은 없었지만 뒤이어 건조된 2번함 뉘른베르크(Nürnberg)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라이프치히의 완공보다 3년 뒤인 1934년에 건조가 시작된 뉘른베르크는 라이프치히보다 더 강화된 무장을 장착합니다. 주포는 동일했지만 기존에 달았던 8.8cm 대공포뿐만 아니라 3.7cm 대공포 8문, 2cm 대공포 8문을 추가로 장착했고 어뢰발사관도 53.3cm(21인치)로 구경을 확대했습니다. 배수량도 늘어 기준배수량 9,040톤에 32노트를 내는 위력적인 순양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라이프치히급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순양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3,900 해리라는 짧은 항속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항속거리가 짧다는 이탈리아 전함이 4,600 해리 정도였습니다.
라이프치히급은 모두 종전때까지 살아남았는데 라이프치히는 1946년에 해체되었고 성능이 괜찮았던 뉘른베르크는 소련이 인계해 어드미럴 마카로브(Admiral Makarov)란 이름으로 소련해군의 훈련함으로 1954년까지 살다 1960년에 스크랩 처분 당합니다.

도이칠란트(Deutschland)급은 꽤 특이한 존재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이런 형태의 수상함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런 형태의 전투함이 건조된건 베르사유 조약 탓이었습니다. 1929년 독일은 보유하고 있던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대체할 주력함을 건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약탓으로 주포는 여전히 11인치(드레드노트급의 기준이 12인치이므로 이보다 낮아야함)과 기준 배수량 1만톤이란 점은 여전했습니다. 11인치 주포와 1만톤의 배수량으로는 방어력과 속도 양쪽을 모두 택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독일이 선택한 건 11인치 주포 6문에 28노트를 내는 속력이 빠른 특이한 배가 되었습니다.
사실 공수주에서 방어보다 공격과 속력을 선택한 건 과거에 영국이 도입한 순양전함 개념을 볼 수 있는데 도이칠란트급이 특이한 이유는 당시 중순양함급이었던 배수량 1만톤급 전투함의 공격력이 11인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이칠란트급이 건조될 당시만 하더라도 군축조약 탓에 신규전함들의 건조가 중지되었기 때문에 순양함들은 화력으로 제압가능했고 전함은 속력으로 도망치는게 가능했습니다.
네임쉽인 도이칠란트가 1929년 건조에 들어가 31년 진수되었고 33년에 취역했습니다. 이 함급은 28cm(11인치)/C28 3연장 포탑 2기를 주포로 장착했고 15cm(5.9인치)단장포탑을 8기 배치했습니다. 53.3cm 4연장 어뢰발사관을 함미 양쪽으로 2기 배치했는데 주력함이 어뢰발사관을 갑판 위에 배치한 건 굉장히 특이하다 할 수 있습니다. 속력은 28노트에 항속거리도 대폭 늘어 10,000 해리를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갑은 매우 부실해 현측갑은 80mm였습니다. 장갑이 부실했지만 기준 배수량 1만톤을 초과해 12,630톤의 몸집이 되었습니다.
<도이칠란트급 2번함 어드미럴 쉐어(Admiral Scheer)>
도이칠란트급도 자매함들끼리 차이가 나는데 2번함 어드미럴 쉐어부터 도이칠란트와 다른 함교를 가지게 됩니다. 배수량에서도 점점 커지게 되는데 3번함인 어드미럴 그라프 쉬페는 기준 배수량 14,890톤이었으며 속력은 28.5노트로 항속거리는 16,300 해리로 증가했습니다.
도이칠란트급은 등장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에 주목을 받았지만 신규전함 건조가 가능해진 1930년대 중반에 들면서 가지고 있던 장점을 상실하게 됩니다. 당장 적성국인 프랑스가 35년에 모든면에서 도이칠란트급을 압도하는 됭케르케급을 진수하게 되고 또한 다른 국가의 신형전함도 28~30노트의 속력을 내는 '고속 전함'의 시대가 됩니다. 속력에서 평균 32노트를 내는 순양함보다 느리고 방어력도 취약했기에 다수의 순양함과 교전에서 불리했고 실제로 자매함 중 성능이 가장 좋았던 어드미럴 그라프 쉬페는 영국의 순양함 3척 전대와 교전(그 순양함 전대가 '제대로 된' 강력한 순양함들이 아니었음에도)에서 피해를 받고 결국 자침하게 됩니다.
어드미럴 그라프쉬페가 개전 초기 1939년 라 플라타강 전투에서 자침하자 도이칠란트는 이름을 뤼초우(Lützow)로 바꾸었고 종전까지 살아남긴 하지만 전쟁기간 동안 사고와 전투피해로 수리를 빈번하게 받았습니다. 종전까지 겨우 목숨을 부지했던 뤼초우는 종전 후 소련해군이 1947년 표적함 처리합니다. 2번함 어드미럴 쉐어도 45년까지 살았지만 다른 수상함과 마찬가지로 1945년 4월 폭격으로 침몰합니다.
1933년 나치독일이 등장함으로 도이칠란트급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건조한 마지막 함급이 되었습니다. 이후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장갑함에서 중순양함으로 함종이 변경됩니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등장은 독일과 유럽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덧글
뭐 헌법재판소가 상주한 도시라는 점과 아름다운 칼스루헤 성도 좋아하지만 역시 날렵해보이는 외견이 좋았습니다.
또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도 좋아하기 때문에 워쉽에 독일해군이 나오면 100%순양함 트리를 타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워십에선 독일 어뢰발사관이 적용된다면 순양함들은 독특한 운용이 가능할 듯 싶습니다. 그건 다음 기회에 다뤄봐야겠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