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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의 발전사③[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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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시리즈는 네이버 필롭님의 블로그에서 퍼가셨습니다. 필롭님의 블로그에 기재된 내용 중 제 블로그 와 다른 내용은 저의 생각과 무관함을 밝힙니다.

1922년 워싱턴 군축조약으로 조약형전함 시대가 되어 신형전함은 10년간 건조가 금지되었습니다. 1930년에는 전함 이하 순양함들에 대한 틀과 규정을 잡은 런던 해군 군축회의가 열렸고 1934년 일본이 조약을 탈퇴했고 조약이 규정한 기간이 지나 각 국은 다시금 신형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합니다. 
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은 영미에 비해 60%뿐인 자신들의 함대비율을 타계하기 위해 야마토(大和)급을 건조합니다.

<야마토(1940)의 방어구조>

야마토는 신형전함으로 세계 최초 18.1인치 주포 9문으로 무장했고 거대한 주포와 그에 맞는 방어력, 그리고 27노트의 속력을 위해 기준 배수량 65,000톤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가 되었습니다.

<야마토의 방어구조 대단한 장갑량이다>

조약형 전함이 기준 배수량 35,000톤이었으니 타국 전함에 비해 1.75배 정도 더 큰 사이즈였습니다. 디자인에서 드디어 측면부포를 폐기하고 건현이 11m로 높아지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넓어진 갑판에 양용포가 아닌 6.1인치 3연장 부포를 4기 배치합니다. 기울어진 연돌과 삼각형 모양을 한 후부 마스트는 야마토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기억됩니다.

<미국의 신형전함 BB-55 USS.North Carolina(1940) >

일본이 조약탈퇴 선언함에 따라 미국도 신형전함을 기공합니다. 일본의 재가입 여부를 보며 기준안을 잡으며 설계안을 잡는데 15인치급과 16인치급 모두 가능성을 두고 건조에 들어갑니다. 결국 일본의 탈퇴가 확정됨에 따라 노스 캐롤라이나도 16인치 주포 9문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는 28노트의 속력을 내는 기존 미국전함의 저속, 중방어에 반하는 전함이었습니다. 5인치 양용포를 함 중앙사이드에 배치해 대공에도 신경썼고 디자인에서도 이 후 미국전함 디자인의 표준이 되는 각뿔형 망루와 함교구조물과 연돌이 일체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국의 신형전함 HMS.King George V(1939) >

영국도 일본의  조약 재가입을 고려하며 신형전함을 건조합니다. 킹 조지 5세급(이하 KGV)는 정치적인 이유로 발목잡힌 전함이었는데 결국 일본은 뛰쳐나갔고 KGV급은 14인치급 전함이 되버렸습니다. 14인치 12문으로 부족한 화력을 보강하려 했으나 구조상 문제로 결국 10문으로 구조를 변경해야 했습니다. 속력은 28노트로 빨랐고 장갑도 대 16인치급 방어력을 가졌습니다.

장갑구조는 넬슨급 처럼 경사장갑은 아니었지만 그런걸 무시하는 중장갑을 자랑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독일 전함 비스마크급 티르피츠와 비교해보면 왜 KGV급이 떡장소리를 듣는지 알 수 있습니다. 탄약고의 위치도 티르피츠에 비해 훨씬 깊숙히 배치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라인 연습작전(Operation Rheinübung)에서 두 함의 운명을 가르게 됩니다.

<말레이해전 직전 1941년 경의 HMS.prince of wales의 레이더들>

또한 KGV급은 레이더와 광학사통을 장착했습니다. KGV급은 당시 전함으로는 낮은 화력이었지만 고속과 안정적인 방어력을 갖추고 5척을 건조해 적재적소에 투입했고 독일 수상함의 통상파괴 작전을 저지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독일의 신형전함 Bismarck(1939) >

 독일은 샤른호르스트급에 이어 비스마르크급을 건조합니다. 기준배수량 41000톤, 만재배수량 50000톤급이라는 거대한 전함으로 11인치 주포를 단 샤른호르스트의 문제점이었던 화력도 14.96인치 주포 8문으로 보강했습니다. 속력은 30노트로 빨랐고 항속거리도 8800해리로 이 전함이 유럽을 빠져나가 통상파괴 작전을 했다면 영국입장에서는 아주 골치 아팠을 겁니다.
 첫 출전인 라인연습작전에서 초전 순양전함 후드(HMS.Hood)를 유폭시키고 자신도 결국 수장당한 짧고 굵게 간 드라마틱한 운명 탓인지 인지도가 가장 높은 편이며 인기도 많지만 그만큼 거품도 많은 전함입니다. 1차대전 패전 이후 기술이 끊긴 독일이 갑작스래 최강의 전함을 만들 수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라인 연습작전에서 비스마르크에게 피격당한 프린스 오브 웨일즈>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 피격당한 비스마르크>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당시 조율중인 신형함이었고 이로인해 문제가 많았습니다. 비스마르크와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에게 다수 피탄당했는데, 포격에 함교가 직격당해 사관들이 몰살당했습니다. 대신 비스마르크는 단 3발의 명중탄을 맞았을 뿐이지만 연료탱크를 관통시켜 수천톤의 해수를 유입했을 뿐만 아니라 연료까지 세어나왔습니다. 이 후 추격전에서 로드니와 KGV와 최종결전에서 순식간에 상부구조물이 문자 그대로 날아가면서 손도 못쓰고 무력화당해 침몰했습니다.

<프랑스의 신예전함 Richelieu(1939) >
한편 프랑스도 됭케르크급 이후 15인치급 신형전함을 건조합니다. 디자인은 됭케르크급을 이어서 주포를 모두 전방에 배치한 디자인을 채택합니다. 제한된 배수량 안에서 15인치급 전함을 건조하려 중량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기관실을 분리시켜 기관과 보일러 한쪽이 파괴당해도 주행을 할 수 있는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역시 30노트의 고속 전함이었으며 됭케르케가 사용한 양용포를 폐기하고 고각포를 채택합니다. 방어에도 충실했으나 프랑스가 조기에 항복하는 바람에 굉장히 기구한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결국 미국으로 피신해 미국에서 완공된 전함입니다.

<이탈리아의 신형전함 littorio(1939) >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도 신형함 건조에 들어갑니다. 15인치 9문을 탑재한 이 전함은 조약형 전함중에서 가장 먼저 건조가 시작되지만 실제론 조약형 전함보다 많이 무거운 전함이었습니다. 리트리오급 건함이전에 콘데 디 카보우르급과 카이오 두일리오급의 대개장으로 리트리오급 건함에 대한 기술과 틀을 잡았습니다.

<1933년 대개장 공사로 환골탈퇴한 Conte di Cavour급 쥴리오 체자레 >

<1937년 개장공사에 들어간 Caio duilio >

리트리오급은 15인치 9문에 29노트의 빠른 속력을 지닌 전함이었지만 작전범위를 지중해로 한정해 항속거리가 약 4천해리에 불과했고 레이더가 없어 영국전함에 비해 색적능력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전함의 존재만으로도 영국 지중해 함대에 위협이 되었고 이로인해 타란토공습을 맞게 됩니다.

 개전초기 각 국의 신형전함은 살펴보았듯이 모두 20노트 후반대 속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방어력을 가진 전함이 속력까지 빨라지니 방어력을 희생해 속력을 택한 순양전함의 입지는 당연히 좁아지며 도태된 개념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빠른 발을 가진 전함은 통상파괴/파괴저지를 할 수 있었고 또한, 속력이 빠른 항공모함과 함대를 이뤄 작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던 구식전함들도 버려두긴 아까우니 충실히 개장을 하며 쓸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각국이 보유한 구식전함들의 상황을 보면 먼저 일본은 보유한 모든 전함의 2차 개장을 마칩니다.

 가장 오래된 공고급도 충실히 2차 개장을 마쳐 고속전함이 됩니다. 공고급 4척은 외향이 모두 약간씩 다르게 개장됩니다. 구형전함 중 속력이 유일하게 빠르기에 크고작은 전투에 투입되었고 대부분 교전에서 망실합니다.

 후소와 이세급도 2차 개장을 마치지만 속력이 빠르지 못했고 활약은 공고급이 다 해서 그다지 비중이 없었습니다.

 나가토도 충실하게 개장을 합니다. 연합함대 기함으로 그 존재감을 뽐냈지만 역시 활약은 거의 없습니다. 상부를 보면 타국에 비해 포탑식 회전부포의 수가 적은게 보입니다. KGV급도 5.25양용포 16문을 배치했지만 대공이 약하다는 평이었는데 말이죠.

 영국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2차 개장을 받은 전함의 수가 얼마 되지 못했습니다.

 리벤지급은 20년대 1차 개장이후 퀸 엘리자베스급에 밀려 2차 개장을 받지 못합니다. 15인치 주포를 가지고 있었지만 느린 속력때문에 예비역으로 돌려지거나 상선대 호위를 맡았습니다.

 퀸엘라자베스급은 특이하게 2번함 워스파이트가 먼저 2차 개장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신형전함과 구형전함의 중간다리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캐슬형함교와 함중앙을 가르는 사출기는 영국 신형전함의 모습을 보이지만 아직 측면부포를 때지 못해 갑판 위 양용포의 갯수가 적습니다.

워스파이트 이후 퀸 엘리자베스와 3번함 밸리언트의 개장이 이뤄집니다. 이 두함은 측면부포를 철거하고 함교 모양도 워스파이트와 다릅니다. 갑판면적이 늘어났기에 양용포를 양 측면에 배치한게 보입니다.

그러나 4번 5번함 말라야, 바함은 2차 개장을 받지 못하고 전쟁에 들어갑니다. 2차 개장을 받지 못했기에 성능도 무척 떨어졌습니다. 바함은 지중해에서 U보트의 뇌격으로 침몰당하는게 필름에 기록된 전함입니다.

 리나운급 순양전함은 네임쉽 리나운은 2차 개장을 받았고 2번함 리펄스(Repulse)는 1차 개장에 머물렀습니다. 리펄스는 말레이 해전에서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함께 침몰했지만 리나운은 전쟁이 끝날때까지 여러 작전에 투입되어 활약했습니다. 비슷한 연식이었지만 속력이 느려 예비역으로 돌려진 리벤지급에 대비되는 운명이었습니다.

넬슨급은 별다른 개장없이 운용되었습니다.

 사상 최대 순양전함이었던 후드도 측면에 붙어있던 6인치 단장포와 함미에 있던 사출기를 철거하는 간단한 공사 외에 큰 개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건조당시부터 방어력이 약했던 순양전함의 방어력을 충분히 보강해 만들었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 개장을 받을 때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결국 머피의 법칙으로 비스마르크에게 가장 약한 부위를 피격받고 탄약고마저 유폭해 굉침하고 비스마르크를 전설로 만드는 역활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전함의 근대화 개장에 조금 소홀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뉴맥시코급까지 1차개장을 마쳤고 테네시급 부터는 별다른 개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근대화 개장에는 새장형 망루가 철거되었고 주포의 앙각이 증가하는 등의 보강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주만 공습을 당하고 가진 전함전력 대부분이 대파 및 침몰당합니다.

<완벽한 16인치급 전함 BB-57 USS.South dakota(1941) >

 워싱턴이 15인치와 16인치를 염두해두고 제작된 전함이라면 사우스 다코타는 처음부터 16인치급 전함으로 상정되어 개발됬습니다. 기술은 더 발달해 3만 5천톤급 전함중에서 16인치 9문에 대 16인치 방어를 달성했고 거기에 속력도 27,8노트로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어 공수주가 조화된 전함입니다. 과달카날 전투 당시 기리시마가 쏜 3식탄에 상부구조물의 전선배열이 날아가 전투불능이 되었으나 바이탈피트는 피해를 받지 않아 전역을 이탈할 수 있었습니다. 부포 배열도 노스 캐롤라이나에 비해 더 조밀해 화망을 더 집중 할 수 있었고 덕분인지 최고의 방공능력을 지닌 전함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정된 배수량에 공수주를 맞추다보니 뇌격에 취약한 편이었습니다.

<수리와 2차 개장을 받고 다시 돌아온 테네시

 미국은 진주만에서 파손당하거나 침몰한 전함들을 인양해 수리하면서 2차 개장도 동시에 진행합니다. 대부분의 구식전함들이 전선에 복귀할 수 있었고 외향과 성능 모두 향상되었습니다.

<미국 최후의 전함 아이오와급(1942) BB-62 USS.MIssouri >

 미국은 사우스다코타에 그치지 않고 아이오와를 건조합니다. 아이오와는 탈조약형 전함으로 기준배수량 45,000톤의 건함이었고 빠른 고속성능을 가진 전함입니다. 고속성을 위해 긴 함체와 함수의 각을 크게 주어 능파성을 향상시켰고 수중저항을 줄이는 구상선수는 더 크고 두드러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폭은 33m가 한계였습니다. 이런 구조적 형상때문에 아이오와급은 31노트의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었고 항모 임무부대와 함께 무리없이 함께 기동할 수 있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예비역으로 돌려지며 보관되다 배트남전쟁, 1차 이라크전쟁 같이 굵직한 전쟁이 발발하면 현역으로 일시 복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대화 개장도 받는 등 최근까지 써먹다가 드디어 퇴역을 합니다. 마지막까지 운용된 전함이라는 특징과 잘빠진 모습 때문에 팬이 많은 전함입니다.

 한편 레이테 해전에서 전함 무사시가 침몰당하고 야마토도 피탄당하자 드디어 야마토도 쓸모없는 6인치 3연장 포를 제거하고 방공화기로 환장하는 공사를 합니다. 그러나 야마토 한척의 방공력을 늘렸다해도 항모부대는 이미 전멸하고 호위하는 순양함들의 성능도 방공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야마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항공전함으로 개장한 이세(1944) >

 항공모함이 하나둘 침몰해 감에 따라 제공권을 잃어가는 일본이 선택한 카드로 놀고 있는 이세급 전함의 후부 주포탑을 철거하고 비행갑판과 사출기를 설치한 항공전함을 생각합니다. 이 공사는 곧바로 진행되어 이세와 휴우가는 항공전함으로 개장합니다. 이 모습을 해도 사출기에서 함재기 이함은 성공적이었지만 착함하기엔 할주로의 거리가 너무 짧아 함재기를 띄울 수는 있어도 내릴 수는 없는 기형적인 항모가 되고 맙니다. 게다가 이세급의 느린 속력으로 역시 별다른 재미를 못 본채 구레항에 계류되어 있다가 공습을 맞고 착저합니다.

<영국 최후의 전함 HMS.Vanguard(1944) >

 뱅가드는 리트리오급과 비스마르크급의 위협을 받던 1941년에 계획되었습니다. 라이온급을 기획하고 있었으나 2차 대전이 발발해 자금의 압박을 받아 결국 포기하고 말았는데 제대로 된 신형전함이 한 척은 있어야 한다는 처칠의 주장이 반영되 라이온급 전함 기획을 확대 발전시킨것이 뱅가드입니다. 자금문제와 전쟁 중 피해를 받은 전투함의 수리 때문에 뱅가드의 건조는 계속 밀려 결국 1944년에야 진수를 마칩니다. 이 당시에는 이미 전함의 시대는 끝이 났고 영국이 상대할 만한 전함도 없었으나 건조는 계속되 취역하게 됩니다.

 배경은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완성된 뱅가드의 성능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클리퍼형의 높은 선수와 플레어를 줘 능파성을 향상시키고 배수량에 비해 가벼운 함포를 탑재했기에 조함 조타성이 우수했습니다. 장갑도 배수량에 여유가 있기에 집중방어 형식이 아니라 거의 전 구역을 커버하는 중장갑을 둘렀는데도 30노트의 속력을 냈고 레이더와 연동하여 부포가 목표를 자동추적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등의 선진적인 기술이 많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함이 당시 돈이 없는 영국전함이었다는게 문제였죠. 취역 후 당연히 할일 없이 빈둥대다 왕실요트로 조지6세를 태우고 남아프리카 순방을 돈 것이 이 전함의 가장 큰 업적이 되었습니다.


 전함의 출발을 영국의 드레드노트가 열었다면 마지막 전함인 뱅가드는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며 전함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크고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낭만적인 사람들이 있는 한 바다를 가르며 위용을 떨친 거함들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질 일은 없을 것입니다. 

* 번외(?) 부록

전함의 연대표. 대충 만든거라 절대적으로 믿으면 안됩니다.(...)

 분명히 짧고 간단하게 써보려 했는데 3편으로 이어지는 장문이 되고 말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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